우리들이 살아가는 하루의 시간들은 여러 가지 일들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커피 한 잔, 티비 뉴스, 전화벨 소리, 문자오는 소리, 문자에 답장 보내기 등등 오전의 한두 시간은 훌쩍 지나가 버린다. 또한 손안의 스마트폰은 국내외의 크고 작은 행사와 공연까지도 속 시원하게 안내를 해준다. 그 중에서도 내가 자주 방문하는 사이트가 ‘목계나루’다.
신경림 시인의 시 ‘목계장터’로 우리들 귀에 익숙해진 엄정면 목계리는 참 아름다운 자연공간이다. 여기에 깨알 같은 콘텐츠가 덧입혀져 사계절 볼거리가 많다. 봄이면 목계강변은 광활한 노랑색의 유채꽃밭으로 눈부시고, 가을이면 메밀꽃밭으로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호수처럼 너른 강폭의 남한강을 따라서 길을 나서면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나누던 대화도 멈춰야 할 만큼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경치 좋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잘 사는 사람이 별로 없어. 가난하지만 맨날 경치 바라보며 노느라고 그래.” 언젠가 신경림 선생님은 남한강 풍경을 바라보시며 그렇게 말씀하셨다. 아름다운 풍경과 맑은 공기 속에서 살 수 있다면 가난한 게 대수랴.
강촌의 경치를 쳐다보며 탄성을 지르다가도 잠시 차를 멈추면 곳곳이 쉼터가 되는 공간이다. 짓푸르른 강물을 바라보며 산책할 수 있게 강 따라 설치된 ‘풍경길’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이라도 색다른 모습을 연출해 준다. 남한강 곁을 천천히 차로 달리면 어느덧 온갖 삶의 무거운 숙제들이 하나 둘 푸르른 물이랑 따라 풀려버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속세(俗世)와 비속(非俗)의 아득한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공간이다. 목계나루에 도착한다. 지금은 배가 드나들지 않으니 목계나루터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옛풍경을 재현하는 행사기간에 맞춰오면 더러 뱃놀이도 즐길 수 있다.
목계나루 리버마켓은 목계장터의 재현이다. 현대판 ‘장돌뱅이’들의 신나는 축제마당이다. 산골 강마을에서 열리는 장터라고 우습게보면 안 된다. 직접 디자인하여 구워낸 도자기, 여름내 정성스럽게 가꾸어 잘 손질된 무공해 식재료들, 천연 주스, 꽃차, 유기농 밀가루로 화덕에 구워낸 수제 빵까지. 폴 브레드였던가. 은퇴하신 부부가 취미로 빵굽는 일을 배우다가 리버마켓에 참여하게 되었단다. 핸드 메이드 옷과 모자들, 막걸리, 군고구마, 유기농 고룻가루, 황태포, 빈대떡, 없는 게 없다. 옛날 목계 강변에 장이 서면 몇날 며칠이고 이렇게 흥겨웠으리라.
한 달에 한번 마지막 토요일에 장이 선다. 다른 지역과 연계하여 장을 벌리니, 상점 주인들은 한가할 틈이 없을 것 같다. 참여하는 분들은 자가생산한 물품만 가져나오셔야 하니 장이 없는 날은 물건 만들랴, 포장하랴 바쁜 나날이라고 한다. 특히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과 손잡고 지역적 공간을 넘어 강변장터를 운영한다.
강변에서 동쪽 산허리를 올려다보면 지난해 9월에 개관한 목계나루의 주인공 ‘강배체험관’이 있다. 옛날 목계나루에서 생활필수품들을 경상, 전라, 충청 내륙으로부터 마포나루까지, 마포나루에서 이곳으로 각종 수산물과 소금을 실어 나르던 배를 모티브로 하여 만든 복합문화 공간이다. 소원 종이배 만들기, 제머리마빡(꼭두각시 인형)놀이 등은 가족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체험코스이다.
그동안 목계역사 문화마을 가꾸기 프로젝트의 진행을 통하여 마을주민들이 내 집안일처럼 나서서 공동체 의식으로 마을의 발전과 콘텐츠 만들기를 위해서 노력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목계와 이웃하고 있는 가흥고미술거리, 앙성온천, 비내섬 걷기코스 등 인근 관광지를 다 돌아보려면 하루해가 짧다. 이번 달은 마지막 주 토요일이 31일이라 번잡한 한 해의 마지막 날을 피해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24일에 목계나루 리버마켓이 열린단다. 연말이기도 하거니와 크리스마스이브에 펼쳐지는 목계나루 리버마켓의 분위기는 한층 풍성하고 아름다운 장날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돌아오는 길에 마음은 홀가분하다. 비경(秘境)답사의 결론은 항상 그렇다. 문화농단의 시국은 갈수록 더욱 떠들썩하지만, 목계나루 마을 사람들은 세상과 무관한 문화잔치의 소박한 날들을 다시 기획하면서 오늘도 바쁜 손길을 움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