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거누이(Whanganui)강은 뉴질랜드 북섬의 국립공원을 끼고 흐른다.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은 강을 신성시한다. 물질적 측면뿐만 아니라 정신적 측면에서도 강에 의존한다. 강을 오염시키거나 개발해서 위락시설을 만들거나 하는 것을 거부한다. 사람보다 더 높은 신의 경지로 올려놓았다. 마오리족은 뉴질랜드 정부를 대상으로 한 오랜 소송 끝에 지난 3월15일 황거누이강을 법인격(legal personality)으로 인정받았다. 황거누이강의 치유와 보존을 위한 예산 지원도 받아냈다.
목계나루는 남한강 강물이 말라붙은 갈수기에도 늘 배가 드나들 수 있는 가항종점(可航終點)이었다. 충청 내륙의 농산물과 서해의 수산물이 교류하는 남한강 상류의 가장 번성한 나루터였고, 한참 때에는 800여 호가 살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1920년대 이후 철도의 개통으로 쇠락해버린 목계나루에는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 시비(詩碑)만 우뚝 서 있다. 그의 고향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는 목계나루에서 멀지 않았다. 그의 시를 보면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라는 구절이 들어 있다. 철길이나 찻길이 열리기 전에 강 주변에서 느리게 먹고 살던 백성들의 삶의 애잔함이 묻어 있다.
4대강이 새 정부 들어서자마자 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 MB정부가 20조원 이상 투입해 밀어붙인 ‘4대강 사업’ 이후 환경오염이 더 심해졌고, 보를 다시 개방하여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이 해법이라고 한다. 홍수가 빈번한 곳에 보를 쌓아서 홍수도 예방하고 가뭄도 극복하는 데 기여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미 1908년 전라북도 호남평야 중심에 옥구서부수리조합이 결성된 것처럼, 홍수와 가뭄을 예방하기 위한 치수(治水)의 역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리조합, 농어촌공사, 수자원공사 등 물 관리 전담 기관도 다양하게 발전해왔다. 즉, 농업이 시작되면서부터 인간의 고민은 물 관리에 있었다. 문제는 물 관리를 얼마나 친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하느냐에 달려있다.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것도 그 지점이다. 오래 전부터 물 관리 조직을 만들고 많은 예산을 들여서 친환경적으로 물 관리를 발전시켜왔다. 그런데 느닷없이 ‘4대강 사업’을 한다면서 사람, 공동체, 환경은 뒷전으로 밀리고 토목, 건설, 개발, 이익, 위락, 업체 등이 앞서가면서 난장판이 벌어졌다.
강은 계절과 날씨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레 흐른다. 늦게도 흐르고 빠르게도 흐르고 잠시 멈춰가기도 하고 좁아졌다 넓어졌다 하면서 산과 바다를 이어준다. 물론 과거의 강과 지금의 강은 다르다. 마시고, 물놀이하고, 고기 잡고, 빨래하고, 배타고 이동하던 다목적의 강에서 지금은 쓰임새가 많이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은 여전히 소중하다. 공업용수, 상수원 등으로 소중하게 쓰이는 것은 물론 바라보고 휴식하고 위로하는 강으로서도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물 쓰듯 한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물은 비싸다. 이제 ‘물 쓰듯이’ 물을 쓸 수 없다. 물은 더 부족해지고 더 비싸질 것이다. 그 비싼 물을 선진국처럼 청정하게 보존하는 데 전력투구해야 한다. 일상에 지친 시민들이 강가에서, 호숫가에서 바닥이 보일 정도로 깨끗한 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다. 그 힘으로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간다. 그런 의미에서도 4대강은 최대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져야 한다. 흐려진 강을 다시 맑게 되돌려서 물려줘야 한다. 뉴질랜드 국민들은 돈이 남아돌아서 황거누이강을 사람보다 더 높이 모시고 사는 게 아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목계나루에 가서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를 읽고 느끼고 위로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눈에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다.